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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5

080701 우리는 함께 잠을 잘 수는 없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함께할 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웃을 수 있다. 사랑도 함께한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잠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이다. 물 위에 홀로 솟아오른 땅의 이름 그것이 섬이다. 우리는 혼자다. 그 무엇도 함께할 수 있지만 잠이 들 때는 각자로 돌아가 혼자여야 한다. 하나의 섬에서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뱃길이 필요하다. 섬은 움직일 수 없다. 배가 그들을 이어준다. 그러나 그 길은 물 위의 길이다. 지도에만 있는 길을 배는 오고 간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물 위의 길, 뱃길은 그러므로 시간 속에서 아무런 영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 한수산, 중에서 정현종의 을 생각나게 했.. 2014. 8. 10.
不醉不歸(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 문지, 1992 오랜만에 허수경의 시집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서걱이는 .. 2014. 8. 10.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2007년 가을 작성. 더불어 산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어떤 것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지요. 이 ‘관계’라는 틀로 고전들을 바라보는 책이 바로 신영복씨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입니다. 흔히들 ‘고전’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을 생각하십니까. 논어나 장자, 혹은 데카메론, 에밀, 군주론…….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요. 특히나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근대화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이들을 고리타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강의」는 현재의 관점에서 동양고전을 다시 읽으며 이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 2014. 8. 10.
강의 간섭 - 겨울에게(윤석정) 그럼에도 이제야 나는 간섭이 심했던 네가 그리워야 너는 나무를 흔들어 내게 한해살이 빼곡한 곡절들 적어 나뭇잎 엽서 몇 통을 보냈어야 너는 입 오물거리는 우렁이들이 돌멩이마다 달라붙어 낮잠 자도록 했어야 네가 혹독하게 간섭한 뒤에야 가장귀에서 새순들이 꿈틀거렸고 사방으로 들꽃들이 만발했어야 그럼에도 네가 간섭이 심하다고 징징거리던 나야 여태 철없이 흐를 수 있을 만큼만 갔지 어디 쫌이라도 정 붙일 데가 없었어야 네 간섭으로 내 살갗이 얼어 단단해지는 게 싫었어야 그게 냉동된 불감증 같아서 더 싫었어야 그렇잖아도 이놈 저놈이 찾아와서 똥오줌 싸지르듯 함부로 나를 요렇게 조렇게 막아대고 파헤치고 난린데 너마저 간섭해서 왜 나를 못살게 구는지 몰랐어야 참말로 간섭이 지긋지긋했어야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 2014.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