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혼자 가는 먼 집>, 문지, 1992
오랜만에 허수경의 시집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서걱이는 1부의 시들.
아직 나는 봄을 타는 중인가보다. (12/05/01)
삶을 여로라 한 것은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나 참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365일의 시간,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길지만, 가끔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에도 사실 계속해서 걷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늘 걷는 그 길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다르겠지요. 더 정확하게는 내 마음에 따라서 달리 보이겠지요.
그렇다면 어제와 오늘, 내 마음은 어디를 걷고 있는 걸까요. 십여년 전 나를 잡아줬던 친구의 한 마디- 환상을 쥐고 현실을 걷다 - 가 왠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36시간입니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고 싶지만, 이미 봄그늘은 다 사라진 계절이지요. 그래서 마음이 더 헤매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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