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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고전시가

향가 (1) - 개관

by 玄月-隣 2011. 12. 2.

 향가는 기본적으로 '자국어로 된 시가를 통칭하는 신라시대의 용어'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향찰로 표기된 시가'라고 할 수 있지요. 이 향찰이라는 게 묘한 언어입니다. 한글이 발명되지 않았을 시기, 실질적 의미를 가진 부분은 새김(訓)을, 문법적 요소는 소리(音)을 빌려쓰는 것이 대략적인 원칙입니다만, 뭐라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있는 공식이 없기에 해독하는 사람에 따라 향가의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되지요. 어쨌든 이 '향(鄕)'이라는 명칭을 두고 '시골'이라는 의미를 주목하여 한시(漢詩)나 당시(唐詩)에 비해 우리 시가를 낮추어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옛 문헌들의 용례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라는 게 요즘의 학설입니다.

羅人尙鄕歌者尙矣, 盖詩頌之類歟.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 『삼국유사』 월명사 도솔가조
◈ 신라 사람들 중에는 향가(鄕歌)를 숭상하는 이가 많았는데, 이것은 대개 시경의 송(頌)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끔 천지(天地)와 귀신(鬼神)을 감동(感動)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라인들이 향가를 폭넓게 향유했다는 증거로 드는 문장입니다. 시험 때 '감동천지귀신비일(感動天地鬼神者非一)'이라는 구절은 통째로 잘 인용해서 썼지요. 한 문제당 B4 답안지 한 바닥 이상 채우는 시험을 치다보니 별의별 걸 다 쓰게 되더군요. (시험 시간은 네 시간, 시험 문제는 열 문제였습니다. 향가의 배경설화에서 뽑아낸, 교수님 본인 말씀으로도 '쪼잔한' 단답형 문제가 열 문제 더 있었지요)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 '주술성'을 뽑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문학적인 감동의 폭과 깊이'가 컸다는 걸로 많이 해석하더군요.


 王素與角干魏弘通, 至是常入內用事, 仍命與大矩和尙修集鄕歌, 謂之三代目云 - 『삼국유사』 진성왕 2년조
◈ 왕은 본래 각간(角干) 위홍(魏弘)과 상통하였는데 지금은 안으로 들여 일을 보게 하였다. 이에 명하여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향가(鄕歌)를 수집(修集)하게 하였는데 그 책을 일러 삼대목(三代目)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세 명의 여왕 중 진성여왕의 기록입니다. 위홍이라는 남자가 아마 유모의 남편이던가 그랬죠-_-; 어쨌든 (여)왕의 남자, 위홍과 대구화상이 당대의 향가를 모아 편찬한 책이 <삼대목>입니다. 찾으면 떼돈을 벌 수 있지요+_+! 아니 그 전에 수많은 전국 수험생들의 원망을 받을지도요.
 '삼대'는 아마 신라 상/중/하대를 이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그 때에도 자기 시대를 저렇게 인식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성골이 왕위를 잇던 때가 상대, 무열왕계가 왕위를 잇던 때가 중대, 그 이후를 하대라고 통칭하더군요. 현재 남아있는 향가가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만 남아있는 것을 볼 때(『화랑세기』 얘기도 나옵니다만 그건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저 책을 찾으면 향가 연구의 폭이 확실히 넓어질 것만은 분명하지요. 예전에 모든 고전문학을 '다산과 풍요'에 갖다붙이던 문태옹께서는 "향가를 일본인들이 먼저 연구했던 것을 볼 때 분명히 일본 어느 곳에 『삼대목』이 남아 있을 거다."라며 순진한(?) 1학년생들을 현혹하셨지만, 아니 아주 신빙성이 없는 얘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더 무섭… 글쎄요. 언제 어떤 경위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책들이 한둘이 아닌 게 안타까울 뿐이죠. 향가여요론을 배울 당시 교수님께서 '『삼대목』을 찾아라'라는 제목의 역사추리물을 써보라는 과제를 주시려는 걸 결사반대하던 기억도 아련하게 떠오르는군요.

釋永才, 性滑稽, 不累於物, 善鄕歌 - 『삼국유사』 영재 우적조
◈ 영재(永才) 스님은 천성이 활달하여 재물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향가(鄕歌)를 잘 지었다.
 영재 스님은 나중에 <우적가>를 다룰 때 볼 사람입니다. 향가의 작자층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낭승(郎僧. 화랑의 무리에 속해있는 스님을 말합니다)에 관한 언급이 많지요. 그 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 『균여전』 제8
◈ 열한 수의 향가(鄕歌)의 사(詞)는 맑고 구절(句)이 수려하였다.
 『균여전』에 나올 향가는 다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므로 여기서 잠깐 짚고 가겠습니다. 고려시대 초기, 균여라는 스님이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깨달음을 10수의 향가로 정리하고, 결사라고 할 수 있는 1수를 더해 모두 11수의 향가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를 최행귀라는 이가 한시로 옮겼다고 하고요. 최행귀의 번역과 관련하여 '한시는 중국말을 얽어매어 5언 7자로 갈고 다듬은 것이고, 사뇌가는 우리말을 3구 6명으로 끊고 가다듬은 것이다(詩搆唐辭 琢磨於五言七字, 歌排鄕語 切磋於三句六名)'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한데, 최근(2006년)에 이걸로 학위 논문을 받으신 분이 있다 그러네요.
 11수의 향가이지만, 보통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 <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往歌)>라고 부릅니다.

※ 갈래 체계
 향가 25수는 구비문학적 성격을 띤 작품부터 지은이가 확실한, 세련된 창작시가까지 걸쳐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식과 내용도 단일하지 않지요. 때문에 갈래 체계에 대한 설도 연구자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울 때에는 성기옥 선생의 견해가 민요계 향가(10구체-여기서의 '구'는 현대시의 '행' 개념과 같습니다- 이외의 향가)와 사뇌가계 향가(10구체 향가)로 깔끔하게 나누어져서 좋았던 생각이 나는군요. '사뇌'라는 용어는 '비로소 <도솔가(兜率歌)>를 지으니 차사사뇌(嗟辭詞腦)의 격조가 있다(始作兜率歌, 有嗟辭詞腦格)'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따온 것입니다. 요즈음은 사뇌가를 10구체 향가-개인창작 서정시라는 향가의 특정 갈래로 보고 있지요.

※ 형식
4구체 :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
8구체 : <모죽지랑가>, <처용가>
10구체 : <혜성가>, <원왕생가>, <원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도천수대비가>, <우적가>,
  <보현십종원왕가>

 향가의 형식을 보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바로 8구체 향가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지요.
 향가를 제일 처음 해석한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선생은 향가에는 4, 8, 10구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후 조윤제 선생은 4, 8, 10구체 설을 수용하면서 특히 10구체 향가는 '전대절(前大節) 후소절(後小節)'의 한국시가의 고유한 특질 - 9구 첫머리의 감탄사를 기준으로 앞부분이 길고 뒷부분이 짧은 것을 말합니다. 경기체가에서도 '위 경(景)기 엇더하니잇고'를 중심으로 앞부분이 더 길지요. 시조 역시도 초·중장과 종장으로 시상의 흐름을 잡기 때문에 이는 타당한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했지요. 조동일 선생은 4, 8, 10구체는 인정하되 두 줄씩 붙여서 각각 두 줄, 네 줄, 다섯 줄 형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4, 8, 10구체가 있다는 쪽에서는 4구체→(6구체)→8구체→10구체로 발전했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후렴구를 뺀 <정읍사>가 6구체라며 시조의 기원이 된다고 주장한 분도 있었습니다'ㅁ') 기록을 보면 같은 시기에 4구체와 10구체가 공존한 것이 보입니다. 때문에 지금은 발전설이 아닌, 공존설을 얘기합니다. 이는 8구체를 부정하는 쪽도 마찬가지고요.
 8구체를 부정하는 쪽에서는 일단 남아있는 8구체 작품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이유로 듭니다. 향가 전체가 많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말예요. 특히 8구체로 분류된 <모죽지랑가>는 10구체 향가가 가지고 있는 미적 특질을 보여준다는 점, 『삼국유사』의 원문 자체에 2구 정도의 빈 공간이 남아있다 - 옛날 책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으니 말이죠 - 는 점에서 10구체였을 거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홍기문 선생이나 성기옥 선생, 이외에 최근의 연구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이는군요.
 8구체 향가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몇년 전 발견된 책인 『화랑세기』와 관련된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 실려있는 <승랑가>와 <청조가> 2수의 향가는 모두 8구체거든요. <승랑가>는 사다함이 가야국 정벌을 위해 출병할 때 미실(김별아의 소설, 『미실』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그녀입니다)이 그를 전송하며 지어부른 노래이고, <청조가>는 사다함이 돌아온 후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있는 미실을 보며 슬퍼하는 감정을 실은 노래라고 하는데- 책 자체에 대한 진위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문학에서는 아직 깊게 다루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나 확실한 건 『삼대목』이 발견되어야 알 수 있겠지요.

+ 그래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조금만 밝혀보자면, 저도 4구체와 10구체로만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4구체와 10구체는 민요 계열과 서정시 계열이라는 뚜렷한 변별을 보이고 있었거든요. 자세한 건 언젠가 받을 학위 논문에서… orz

※ 작자
 작자는 가공인물로 보는 견해와 실존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전자는 향가 관련 설화를 볼 때 설화의 인물들의 행적이 불분명하며, 작자의 이름이 작품의 성격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 이를테면 왕의 약속과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신충(信忠), 피리를 잘 불어 달을 멈추게 했다는 점에서 월명사(月明師), <안민가>를 지어 바쳐서 충담사(忠談師) 등등 - 을 근거로 들고 있지요. 반면 후자는 설화와 관계없는 <모죽지랑가>의 작자를 예로 들며 전자를 반박하고, 실존했던 사람이나 혹은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후대의 재명명(再命名)이라고 봅니다.
 실존인물로 볼 경우는 과연 이 작자층의 신분이나 성격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도 논란이 됩니다. 보통 좀 세밀하게 나누면 승려, 화랑, 여류, 민요계, 실명(失名) 정도로 보지요. 하지만 이 분류는 서로 겹치는 것도 있고, 연구자에 따라 하나의 작품을 서로 다른 작자층으로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뇌가에 한해서만 그 작자층을 고려한다면, 보통 화랑의 무리에 속해있으면서 승려이기도 한 '낭승(郎僧)'을 주 작자층으로 봅니다. 월명사가 왕에게 얘기할 때 (다음에 <도솔가>와 <제망매가>를 다루면서 더 얘기하겠지만요)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라는 걸 근거로 들 수 있지요. 어찌 되었든 간에 지식인 혹은 문화인이 10구체 향가를 지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명색은 개관이라고 했지만, 양이 만만찮군요-_-; 과제로 낸 서평 외에는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만;; 여튼 다음부터는 향가 각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시험 공부 겸 자료 정리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생각보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처음 다짐과는 달리 포스팅이 좀 불규칙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 엠파스에서 제공하는 백과사전 '향가' 항목에도 설명이 잘 나와 있답니다:)

+ Written by 玄月 at 2008/07/25 00:16
+ Commented by 아침의전령 at 2008/07/25 00:30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이거 좋은데요 'ㅁ'. 근데 이걸 외워서 쓰시다니 덜덜덜;;
+ Commented by 玄月 at 2008/07/25 14:04
 페이지 채우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_- 그것도 열명 남짓 앉아 있는 강의실, 교수님은 돌아다니면서 '글씨가 크다', '줄 간격이 글자의 두 배네' 이런 소리를 하시는데 ┓- 뭐, 경험해보면 다 알게 된다는ㅋㅋ 지금부터 3학년 말까지는 완전히 전공 러시일텐데, 미리 명복을 빌어줄게:)
+ Commented by 이미 at 2008/07/25 19:47 
 이런 시도 엄청나내도~ㅎ 무튼- 문태옹이 그리워요.. 간지좔좔 이셨는데ㅠ
 아- 고전산문을 보면 고전운문이 가물가물하고, 현대문학을 보면 언어기능이 가물가물하고, 언니의 글들을 보며 상기시켜야겠어욤ㅠ
+ Commented by 玄月 at 2008/07/26 18:02
 간지좔좔ㅋ 향가였나 고려가요였나 여튼 가끔씩 책에 언급이 되곤 하던데-
 언어기능은 진짜 잠깐만 손 놔도 완전 가물가물-_- 붕어 기억력이 좀 원망스럽다ㅠㅠ
+ Commented by 권미현 at 2011/06/07 09:58 
 문체가 좋아요. 친근하고, 쉽고, 그리고 ......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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