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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고전시가

상대시가 (3) - 황조가

by 玄月-隣 2011. 11. 29.

翩翩黃鳥 (편편황조)     : 훨훨 나는 꾀꼬리
雌雄相依 (자웅상의)     : 암수 서로 즐거운데
念我之獨 (염아지독)     : 외로울사 이 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 뉘와 함께 돌아가리


 (유리왕) 3년(기원전17) 7월 골천에 별궁을 지었다. 10월에는 왕비 송씨가 죽었다. 왕은 다시 두 여자를 후실로 얻었는데 한 사람은 화희라는 골천 사람의 딸이고, 또 한 사람은 치희라는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사랑 다툼으로 서로 화목하지 못하므로 왕은 양곡에 동궁과 서궁을 짓고 따로이 머물게 했다. 그 후 왕이 기산에 사냥을 가서 7일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가 다투었다.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나라 집안의 종으로 첩이 된 사람인데 왜 이리 무례한가?"하며 꾸짖어 말했다.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며 쫓아갔으나 치희는 성을 내며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쉬며 꾀꼬리들이 날아 모여듦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노래를 하였다.

-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1


 이 시 역시도 작자 시비가 있지만 대부분의 논자들은 '원래 우리 말로 창작되어 불리던 것이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정착되어 『삼국사기』에 수록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원래 유리왕이 지었다고 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요. 유리왕이 지었다는 쪽에서는 왕비 송씨가 죽었을 때, 치희와 헤어졌을 때, 유리왕이 아직 왕비를 맞기 전 미혼일 때 지었을 것이라며 각각의 견해가 나뉩니다. 하긴 어느 쪽이든 獨이라는 한 글자에 응축된 정서와 잘 어울리지요. 유리왕이 지었다고 보지 않는 쪽에서는 원래 배우자를 찾는 사랑의 노래로 불리던 것이 유리왕 설화와 결합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이쪽에서도 유리왕이 '불렀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것이 과연 서정시인지 서사시인지 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황조가>가 꾀꼬리라는 자연물을 빌어, 반려자 없이 고독하게 사는 자가 그 구애의 정서를 읊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라고 보는 입장이지요. 후자는 화희와 치희의 이름에 착안한 것입니다. 화(禾. 벼)와 치(雉. 꿩)이라는 이름을 근거로 수렵경제로부터 농경경제로 변화한 역사적 사실이 투영된 것이라고 하지요. 혹은 이 둘을 각각의 토템을 섬기는 부족으로 보고, 부족상쟁을 막지 못한 추장의 탄식이라 보기도 합니다. 또는 두 여자의 배경을 보고 치희-한인으로 대표되는 외래세력과 화희-골천인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의 알력을 상징한다고도 하던가요. 서정시든, 서사시의 여러 문맥이든 다 타당성이 있는 설명입니다. 단지 작품 해석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을 뿐이지요. 시 자체를 주목한다면 서정시라는 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설화와 함께 기록되었다는 문맥을 중시할 때 서사시라는 설도 설득력을 얻는 것이니까요.


 뭐, 무엇이라고 하든 간에 유리왕이 고독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게 사랑 싸움을 말리지 못해서든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든 결국 그가 원하던 '공존'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니까요. (어릴 적에 이 텍스트를 처음 접했을 땐 '치희가 더 예뻐서 굳이 쫓아갔나,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돌아보면 '양손에 떡'을 쥐지 못해서 투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러고보면 유리왕은 참 기구한 팔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몽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신화 시대의 인물이었거든요. 스스로 왕이 된 위대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유리왕은 더 이상 신화 시대를 살아가지 못합니다. 유리왕이 어릴적 활을 쏘다가 이웃집 아낙의 물동이를 깼을 때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설화지요. 스스로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왕이 된 아버지를 찾아가야만 했던, 그리고 나라를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목격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시를 빌어 나타난 것만 같네요.

+ Written by 玄月 at 2008/07/21 23:03
+ Commented by 아침의전령 at 2008/07/21 23:07

 황조가황조가황조가+_+ 지금 길에서 외우고 다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좋은 작품이죠!
+ Commented by 玄月 at 2008/07/21 23:11
 <구지가>가 훨씬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어서 재밌지만, <황조가>는 또 나름의 맛이 있지. 그치만 자꾸 '고개 숙인 남자'가 생각나서 유리왕이 불쌍해보인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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