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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책 읽기 책 일기

[책] 보름동안 만났던.

by 玄月-隣 2012. 3. 4.
 으아아, 먼저 쓰던 글이 싹 날라가버렸다;ㅁ; 읽은 책들 중 일부는 집에 보냈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ㅠㅠ 씨잉, 이번엔 책도 좀 읽었겠다 신경써서 쓰고 있던 중이었는데… OTUL.
 덧. 쓰고 태그를 달면서 보니 이번 보름간은 문지 책 순례-_-; 라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집에 문지 책이 좀 있긴 하구나. 물론 요즘 시집 편향적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이청준(2011), 신화를 삼킨 섬, 문지
 내용이 이상하게 낯익다 했더니 열림원에서 출판되었을 때 바로 읽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더라.
 초기 소설에서부터 줄기차게 다루었던 개인과 국가권력의 문제가 나타나 있는 책이다. 특히 8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위령굿'을 중심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편제> 연작이나 <줄> 등에서 볼 수 있던 전통에 대한 관심이 합쳐졌다고도 볼 수 있다. 주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계인이라는 점도 시공간적 배경과 맞물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 그리고 늘 그렇듯 명확한 결말이 나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사실 명확하게 선을 그어 보여줄 수도 없는 문제니까 그럴 수밖에.
 그래도 개인적으로 참 아쉬웠던 건- 이게 이청준의 마지막 장편이었다는 점. 프롤로그/에필로그의 아기장수 이야기나 중간에 삽입된 김방경과 김통정의 설화 등을 볼 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전통 서사와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주제를 더욱 조화롭게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덧. 좌우의 대립으로 인한 개인과 국가간의 문제, 그리고 '해원굿'이라는 소재. 그러니 자연스레 황석영의 <손님>과 임철우의 <백년여관>이 생각났다. 시간날 때 차분히 다시 읽어보고 제대로 엮어볼 것.

한강(1995), 여수의 사랑, 문지
 좋아하는 작가의 첫 소설을 보는 일은 마치 첫사랑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 등단작을 포함하여 7편의 소설을 보면서 이 작가, 그때도 참 단단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90년대 작가라기보다 7-80년대 소설가를 보는 듯한 느낌. 물론 젊기에 흔들리는 모습이나 지금보다 덜 다듬어진 모습들이 보이지만, 소재나 분위기 혹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태도가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옛날을 살아낸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풀 수 있었던 <희랍어 시간>에 대한 의문. 후반부로 가면서 무시간성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그 속에서도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흘러가는 건 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겠지.

유하(재판-1994),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지
유하(1995),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지
유하(2000), 천일馬화, 문지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알게 된 유하 감독이 원래 시인이었다더라. 궁금한 마음에 서점에서 책을 샀고, 한동안 빠져 살았더랬다. 그리고 얼마 전, <하울링>을 보고 다시금 유하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풍자적인 글 읽기/쓰기 취향에서 좀 벗어나서 그런지 예전만큼 가슴을 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첫 시집에서는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압구정동과 시인의 고향인 조용한 시골 하나대와의 간극이 주목받았었는데, 예전에 어설프게 오규원과 비교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둘 다 풍자를 주무기로 삼았지만(물론 오규원은 일부 시집에 한정) 유하에게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있었다면 오규원은 그것마저 무화시켰다, 같은. <천일馬화>에서는 풍자의 '공격적 웃음'이 한층 심화된 느낌이었고.
 그리고 오래도록 눈길을 잡아끌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2003년부터 2007년 가량에 이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이 페이지 곳곳에 살아있다. 그걸 보며 어렸던 나를 떠올리자니 꽤 부끄러웠달까.

오규원(1995),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문지
오규원(1999),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문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오규원의 시집. 이제 두어 권 남았고, 조만간 전집을 살 계획이다(장하다!)
 '날[生]이미지의 시'를 표방하고 있는 시. 일견 김춘수의 '무의미 시'에 견줄 수 있지만, 그와는 궤를 좀 달리 한다고 보인다. 김춘수는 의미의 사라짐을 꿈꾸었다면 오규원은 이미지들을 모아 메시지를 그려내고자 했으니까. 그렇지만 앞선 시집들보다 재미가 덜한 것도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오규원의 베스트는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와 마지막 시집 <두두> 두 권이다.

송경동(2011),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문학사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고 있는 송경동의 산문집. 희망버스 뿐만이 아니라 그 앞의 수많은 현장들을 발로 뛰어다닌 그. 그러면서도 험한 소리를 하지 않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옆을 보듬을 줄 아는 그. 밤마다 찬찬히 한 챕터씩 읽어나가며 참 행복했고, 가슴 먹먹했다. 부디 다시는 꿈꾸는 자가 잡혀가는 일 없기를. 더불어 함께 꿈꿀 수 있기를(내일부터 한 해 동안 애들과 같이 나눌 말^^)
 그리고 산문집을 산 김에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그의 시집도. 이제 슬슬 읽어나갈 때가 되었지 싶다.

법륜(2011), 엄마수업, 휴
 엄마의 마음으로 애들을 바라보기 위해서 읽었던 책. 두고두고 곱씹으며 애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다듬기에 알맞은.

호연(2011), 사금일기, 애니북스
 <사금일기>를 읽은 지금도, 나에게 호연은 <도자기>의 작가다. 그렇지만 <사금일기> 중에서 <도자기> 얘기 하는 거 봤는데 그런 작품 더 할 생각은 없나봐. 슬프다.

문태준(2004), 맨발, 창비
 다시금 누리고 싶었던 '외따로움'의 시간. 그리고 건져 올린 한 편의 시.

 
산모롱이 한 굽이 돌아 당신을 만나러 간다. 당신의 희미하고 둥근 눈썹을 예전에 내가 어루만지기나 하듯이 꺼져가는 달을 어루만지는 허공, 저렇게 오래 배웅하는 것도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잠깐 눈발은 그쳐 있다. 산새가 다시 운다. 울음이 성성하다. 나와 당신 사이에 싸락눈에 묻힐 산모롱이가 한 굽이 있다. - '산모롱이 저편' 전문

 시집을 덮고 이젠 또 무슨 힘으로 살아가나 했는데, 내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 나왔다. 제목은 <먼 곳>. 너무나 당연한 듯 냉큼 질러버렸고 지금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첫 대면을 기다리는 중.

박라연(1990),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문지
 오랜만에 다시 잡았던 박라연의 시집. 여전히 평강공주의 이미지는 눈물겨웠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낮은 곳까지 끌어안고 있었다. 그 다사로움이 아마 여성성, 이라 불릴 수 있는 거겠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요즘 위로받고 싶은 게 맞나보다. 한동안 또 몇몇 시편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겠구나.

 덧. 책을 정렬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시집의 경우 이름 가나다 순으로 정렬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인의 작품집은 출간년도 순서로. 그래서 박라연 다음 박정대, 박형준, 송경동, 신용목, 심보선 순으로 정리된 내 책장.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심보선까지 한번 더 만나보는 게 목표다.

최인훈(3판-2008), 서유기, 문지
 <회색인>에 이어 읽어내려간 <서유기>. 솔직히 말해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가끔 있었다. 독고준 이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 말이다.
 독고준이라는 주인공이 같다는 점과 <회색인>의 마지막 장면과 <서유기>의 첫 장면은 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흔히 하나로 묶이곤 한다. 그러나 전자에서보다 후자는 훨씬 더 사유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회색인>의 독고준은 움직이고, 좌절하고, 열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유기>의 독고준은?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니까. 그런데, 어디로? 그는 자신조차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자신을 찾는 광고를 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그녀가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논개를, 이순신을, 조봉암을, 이광수를 만나게 되는 상황들을 차례로 맞닥뜨리지만 그 누구도 구하지 않고 정처없이 그저 간다. 결국 그는 제일 첫 장면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뿐. 300여 쪽의 책 전체가 그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상념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왜 하필 서유기인가? 독고준의 생각 중에 그런 부분이 있다. <서유기>의 사상이 깊다는 것을 얘기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목숨 없는 물건이 자기 환상 속에서 '나'를 참칭하고 부처의 뜰을 벗어나 헤맨 끝에 부처의 노여움, 혹은 부르심으로 깨어 본래의 자리에 돌아간다는 것은 그대로 기독교의 창조·죄·구원의 이야기가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 그럼, 과연 독고준은 구원을 받은 것인가?
 나 말고도 이게 궁금한 사람이 있었던가 보다. 고종석의 <독고준>은 이 질문에 대한 작가 나름의 대답일 터. 이제 남은 과제는 새 책을 읽는 것이겠지. 사실 <회색인>과 <서유기>를 거친 여정은 <독고준>을 만나기 위해서였기도 하니까. (전작 수집 작가의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독고준>이 이른바 3부격에 해당된다니 어찌 앞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지.) 그런데 당분간은 이 골치 아픈 녀석, 못 볼 것 같아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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