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함께/책 읽기 책 일기

[책] 보름동안 만났던.

by 玄月-隣 2012. 2. 20.
오규원(재판-1995),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지
오규원(재판-1994),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문지

오규원(재판-1995), 사랑의 감옥, 문지

 봄이 오기는 오는가보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봄이 오면 오규원의 시집을 손에 잡고 있었으니. 아마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라는 '봄'의 잔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난 2일, 5주기 낭독회에도 가고 싶었지만 말썽쟁이 애기들 때문에 실패한 건 더 되새기지 말자. 그래도 내겐 오규원의 시가 있고, 그 시를 즐길 봄이 있다.

최규석(2005), 습지생태보고서, 거북이북스
최규석(2010), 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최규석의 만화를 보며 느끼는 건 먼저 출구가 없는 세계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러나 그 세계는 묵시록적인 공포가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많은 모습들을 그려내는 게 '그대로'라기보다 '그러므로'라고 느껴지는 그런 따뜻함이 있었다.
 특히 <울기엔...>은 수채화의 질감이라 그런지, 옥상에서 먼 곳을 바라보던 아이의 등이 오래도록 남는다.

문태준(2008), 그늘의 발달, 문지
 지난 가을,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으며 강대나무를 마음에 심었고, '외따롭다'란 말과 '머츰하다'란 말을 마음 사전에 올려두었다. 그러면서 동기 녀석 하나와 '문태준은 역시 진리야ㅠ'라며 공감했었지.
 그 '외따로움'의 정서는 이번에 읽은 시집에서도 여전했다.

 
…(전략)…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百年'이라는 시를 두고는 '눈부신 외로움'이라는 말도, '홀로움'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나는 보기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하다는 '외따로움'이 들어맞을 뿐.
 그리고 나에겐 아직 <맨발>이 남아 있으니 그 '외따로움'을 다시금 누릴 수 있겠지.

박상률(2판-2004), 봄바람, 사계절
 교장 선생님이 낸 방학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렸던 책. 그렇지만 아직도 그 과제, 미해결상태라는. (먼 산)
 청소년을 위한 소설인만큼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 그래도 '지금, 여기'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그 시절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한 글이라 보인다.

이시영(2012),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창비
 이번 주 한겨레21에 표제시 전문이 실리기도 했었지. <은빛호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후 같은 판형으로 갖게 된 세 번째 이시영의 시집이다. <은빛호각>에서 보이기 시작한 단시(短詩)에 대한 편향도, <우리의...>에서부터 두드러진 현실 - 신문, 책, 노래 등 - 을 콜라주로 나타내는 것도 여전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시에 대한 시가 눈에 들어왔다는 거. 견결한 듯하면서도 흔들리는 그 모습이 왠지 반가웠다.
 그리고 다음 메이데이 때, 종례일보에 싣기 위해 뽑아둔 시 한 편.
 유독가스가 뿜어져나오는 해발 2700미터가 넘는 인도네시아의 한 유황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70킬로그램이 넘는 등짐을 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내릴 때 입에 재갈을 문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으스러지게 이를 깨물지 않기 위해서란다. 세상엔 아직도, 이렇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 '노동' 전문

서경식(2007), 시대를 건너는 법, 한겨레출판

 신문에 연재될 때도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미뤄두기만 했던 서경식의 글을 이제서야 찾아 읽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할 수 없는 그. 그래서 모국어만큼이나 모어의 권리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그와 세상 모든 소수자-변방인들에게 시혜가 아닌 연민의 눈길을 보내는 그.
 마찬가지의 처지여서였을까. 조선인이면서 전범으로 신산한 삶을 산 이학래씨의 이야기를 다룬 글의 마지막 문단. 성묘를 마친 날 저녁에 광주에 사는 이학래 씨 친척 분이 불쑥 한마디했다. "그는 당시 열여덟 살 젊은이였습니다. 그런 만큼 일제 황민화사상이 내면까지 침투해 있었던 거지요." 그 말을 듣고 "그런 의미에서 그야말로 피해자 아닙니까. 그에게 황민화사상을 주입하고 전장에 내보낸 자들이야말로 죄가 더 무겁겠지요."라고 내가 대답하자, 친척은 목청을 낮추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이곳엔 그걸 이해해줄 사람이 거의 없어요."
글을 읽어나가다보니 '에비'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이 생각나서, 책을 읽는 지금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진 바 없는 현실이 답답해서 슬쩍 옮겨본다.

정일근(2009),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지
 문득 생각나 손에 집어든 정일근의 시집. 낮은 목소리로 '서정'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시집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 이 한권이면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그 옛날 손전화가 없었을 때처럼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것.
 덧. 인디언 달력을 흉내 내어 쓴 '은현리 달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4
월, 벚나무 아래 앉아 연필로 밑줄 치며 그리운 시집 읽는 달. 내 4월도 이렇게 지나갈 수만 있다면.

오진원(2011), 그래도 나를 사랑해, 문지

 제목에 이끌려 사버린 시집이다. 더 정확하게는 문지 어린이에서 나온 동시집. 그렇지만 동시가 어린이들만 보는 것이라고 누가 규정했던가.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한가득 묻어나는 시편들에서 나 역시 '그래도 나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마구 그린듯한 그림들이 시와 어우러져서 더욱 보는 맛이 각별했던.

법륜(2012), 방황해도 괜찮아, 지식채널
 쉽게 읽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이야기들. 내 마음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늘 잊지 말고 기억할 것.

'책과 함께 > 책 읽기 책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보름동안 만났던.  (0) 2012.03.17
[책] 보름동안 만났던.  (0) 2012.03.04
[책] 보름동안 만났던.  (0) 2012.02.10
[책] 보름동안 만났던.  (0) 2012.01.15
[책] 보름동안 만났던.  (0) 201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