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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책 읽기 책 일기

[책] 보름동안 만났던.

by 玄月-隣 2012. 4. 1.

고종석(2010), 독고준, 새움
고종석(2003), 엘리아의 제야, 문지
 고종석의 책을 다 읽어간다. 에세이와 시평집들은 출간 순으로, 소설은 역순으로. 소설이 역순이 된 까닭은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고 난 뒤, 까먹기 전에 <독고준>을 먼저 잡았기 때문. <기자들> 이후 꽤 오랜만의 장편 소설인 걸로 기억하는데 - 물론 이 <기자들>은 사야 되는 책 목록 중 하나. 조만간 헌책방 발품을 팔아야 할 것 같다 - 기대했던 것보다는 고종석의 색채가 많이 묻어났다. 하긴, 그 문제인 독고준의 사유 방식을 온전히 따라가려면 내 사고가 먼저 파편화되겠지.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뭔가 의아했던.
 그리고 <엘리아의 제야>. 책을 읽다가 뒷부분에 무언가 검은빛이 어른거려 넘겨봤더니- 그 때의 나는 꽤나 성실했었나보다. 앞 속지엔 '2003년 9월 5일 금요일. 린이에게'라고 쓰여 있고 - 수능 치기 두어 달 전. 아마 무척이나 공부하기 싫었던 듯. - 뒤의 내지엔 '고종석씨의 이 소설들을 읽으며 역시 그 답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평론이 아니라도 느낄 수 있는, 그의 분신들. … 모든 소수와 모든 주변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2003.09.06.Rin'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생각난 김에 요번에 다시 두어 마디 끄적였다는. '책을 사고,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나는, 아마 에세이스트 고종석을 더 진하게 느꼈던가보다. 소수자와 주변인-경계인들을 생각했던 걸 보면.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라 느낀다. 자기에 대한, 혈육에 대한, 이성에 대한 잔무늬들. 내 가슴이 따라 일렁거린다. 덧. 시선의 보수화, 인가 나에 대해 더 들여다보게 된 건가. 2012.03.25.일요일아침.Rin'

 

김연수(2005),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비
 김연수의 <원더보이>를 사두고도 넘어가지 못한 건 아직 요 녀석이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예전에 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단편들의 모음. 그러면서 다시 느꼈다. 김연수는 참 성실한 거짓말쟁이로구나.

 

 박상률(2011), 방자 왈왈, 사계절
 3학년을 가르치게 되면 필요하겠거니, 해서 샀던 <춘향전>의 패러디. 방자가 자신의 신분 때문에 춘향이가 아니라 향단이와 맺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쬐끔 씁쓸했지만 - 물론 결말에서 왜 춘향이와 맺어질 수 없는가가 나오지만 -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볼 수 있었던 방자의 <춘향전>. 19금 영상만 빼버리고 <방자전>이랑 비교해보게 해도 재밌겠다, 싶었다. 결말 처리도 마음에 들었음. 설명은 좀 사족이란 생각이 들지만, 애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그 정도 설명은 붙어 있어야겠단 생각도 들고. 그러고보니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에도 <춘향전>의 패러디가 한 편 있었더랬지. 그건 방자가 아닌, 변학도를 위한 패러디.

 

 김선우(2012),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날이 갈수록 시집 읽는 맛을 더해주는 김선우의 근작. 건조하게 말하자면 '에코 페미니즘'이 가득한 시집이요, 시를 빌려 시적으로 말하자면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던 시집. 어제 몸만 괜찮았어도 "구럼비, 우리의 무한한 혁명에게" 북콘서트 가는 건데 아쉽다.

 

 한귀은(2011), 이별 리뷰, 이봄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라는 선전 문구에 홀려서 냉큼 사버린 책. 그리고 깨닫고야 말았다. 내가 왜 정혜윤의 독서 편력기와 맞지 않았는지. 건조한 책 읽기라면야, 어차피 하던 공부의 연장선에 있으니까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수다떠는 책 읽기라면야 - 이를테면 고미숙이 소개하는 책/영화 이야기 같은 - 그 나름의 입맛이 있으니 귀로 듣는 듯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말랑말랑한 책 읽기는 대책이 없더라. 정혜윤의 책을 읽으며 짜증냈던 기억도, 아람샘의 책을 읽으며 왠지 아리송했던 것도 여기에 와서야 정리가 되는 듯. 한귀은의 이 책 역시도 굉장히 말랑말랑한 책 읽기에 속한다. 일단은 꽂아뒀지만 다음에 한 번은 나가고야 말, 그런.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주석(2006),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북폴리오
 며칠 간 알라딘에 반값으로 뜨다가 안 보이기에 찾아봤더니 품절. 그래서 다 팔리기 전에 냉큼 예스에 가서 질렀다. 1권은 빨간색도 있어보이던데 내게 온 건 녹색의 책. 그래도 3권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오히려 2권과 잘 어울릴 수도 있기에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내용은 굳이 첨언할 것도 없는 셜록 홈즈의 이야기. 뭐 이런 것까지 주석을 붙여 뒀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하나의 텍스트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