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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시를 읽는 밤19

강의 간섭 - 겨울에게(윤석정) 그럼에도 이제야 나는 간섭이 심했던 네가 그리워야 너는 나무를 흔들어 내게 한해살이 빼곡한 곡절들 적어 나뭇잎 엽서 몇 통을 보냈어야 너는 입 오물거리는 우렁이들이 돌멩이마다 달라붙어 낮잠 자도록 했어야 네가 혹독하게 간섭한 뒤에야 가장귀에서 새순들이 꿈틀거렸고 사방으로 들꽃들이 만발했어야 그럼에도 네가 간섭이 심하다고 징징거리던 나야 여태 철없이 흐를 수 있을 만큼만 갔지 어디 쫌이라도 정 붙일 데가 없었어야 네 간섭으로 내 살갗이 얼어 단단해지는 게 싫었어야 그게 냉동된 불감증 같아서 더 싫었어야 그렇잖아도 이놈 저놈이 찾아와서 똥오줌 싸지르듯 함부로 나를 요렇게 조렇게 막아대고 파헤치고 난린데 너마저 간섭해서 왜 나를 못살게 구는지 몰랐어야 참말로 간섭이 지긋지긋했어야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 2014. 8. 8.
散文詩 2(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2014. 8. 6.
그늘(김영태) 나는 그의 그늘에 가서 그가 나를 멀리한 이후의 그늘 안의 그늘로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살 속에 遮陽을 매달고 6년 동안 촛불을 켜놓고 살던 것도 지금은 희미해진 그의 몸 지도 위 나 쉬어가던 곳도 그늘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지팡이 짚고 모자 쓰고 넉넉한 옷 가을 같은 옷 입고 지도도 필요 없이 가끔, 아주 가끔 나 살던 집을 찾아갔었는데 - , 문지, 2000 '아주 가끔' 찾아간 '나 살던 집'은 그 언젠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고 '가엾은 내 사랑'만이 갇혀 있는 빈집이었겠지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그늘을 '반 근' 정도로, 적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10/08/28) 4년만에 시집을 새로 잡았습니다. '그' 문지 200번대 시집들을요. 그 동안 바뀐 것들을 돌아봅니다. 적막한 연구실에서 번.. 2014. 8. 5.
엄마(도종환) 엄마! 내 목소리 들려요? 나는 엄마가 보이는데, 엄마도 내가 보여요? 엄마, 나 이제 여기를 떠나요. 너무 놀랐고, 너무 무서웠고, 순간순간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소리쳐 불렀어요. 내가 이렇게 사고를 당한 것 때문에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미안했어요. 아빠한테도요. 내가 아직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던 그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며 엄마를 생각했어요. 매일 잠에서 나를 건져내던 엄마의 목소리, 내 어깨를 흔들던 엄마 손의 보드라운 감촉, 매일 듣는 엄마의 달콤한 꾸지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던 봄바람, 내 살에 와 닿던 바람의 천 자락, 냉이국이 끓는 소리, 햄이 프라이팬 밑에서 익어가던 소리, 계란이 노랗게 몸을 바꾸는 냄새, 그리고 부엌에서 들리는 딸그락 소리, 그것들이.. 201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