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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밑줄 긋기

101117. 김려 <유배객 세상을 알다> 중에서

by 玄月-隣 2014. 8. 24.

 시로 남은 연희와의 추억은 눈이 부시다. 봄날 그녀의 집 우물가에서 수정처럼 영롱한 앵두를 따서 함께 나누어 먹었던 연희,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꽃잎을 따서 그녀의 붉은 뺨과 자기의 흰 수염에 대보며 장난을 쳤던 연희, 긴 여름 장마 끝에 달이 뜨자 보고 싶은 마음에 신 신고 개울가로 나서니 어느새 작은 우산을 들고 치마를 끌며 술병을 들고 찾아온 연희, 달 뜨는 가을밤 낙엽 쌓인 그녀의 집 뜰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얘기가 다하면 손잡고 단풍나무 붉은 뜰을 함께 거닐던 연희, 펄펄 날리는 눈바람에 뚫어진 창으로 문풍지 펄럭이는 겨울밤 근심에 뒤엉켜 쓸쓸히 누웠는데 얼어붙은 눈길을 또각또각 밟고 와 화로에 술을 데우던 연희, 눈 그친 맑은 날 달은 밝고 촛불은 가물거리는데 따뜻한 양털 휘장을 겹겹이 친 밖에서 술 거르고 송이버섯 구워 대접하던 연희… 이런 연희를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하여 남은 삶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여인이었기에, 꿈속에서라도 시에서라도 그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것.

- 강혜선의 서문 중에서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연못에 붉게 핀 연꽃 천만 송이 연희 생각에 더욱 사랑스럽구나.

마음도 같고 생각도 같고 사랑 또한 같았으니 한 줄기에 나란히 난 연꽃을 어찌 부러워했으랴?

평생을 살면 즐거운 이가 원망스런 이가 되고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이 되는 건지?

하늘 끝과 땅 끝이 산하에 막혀서 죽도록 부질없이 이별가만 불러대네.

전생의 죄과로 이생에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연희야! 연희야! 너를 어찌하랴?

… (중략) …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생각나 내 혼은 말없이 스러질 뿐.

혼이 스러져도 생각은 멈출 수 없어 멍청한 듯, 미친 듯, 또 넋이 나간 듯.

사방 벽을 빙빙 돌며 혼잣말 하자니 구곡간장 끊어지고 괴로이 머리 꺾이네.

천 번 만 번 생각해도 도무지 어쩔 수 없어 차라리 이제는 생각을 끊고 말아야지.

생각을 끊자 해도 못 끊고 또 생각나니 간장이 타는 듯, 심장이 다 타는 듯.


290수의 思牖樂府의 첫 수와 마지막 수. 이와 같은 감수성으로 어찌 그 세상을 살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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