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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고전시가

향가 (9) - 도솔가·제망매가

by 玄月-隣 2012. 2. 7.

 


今日此矣散花唱良        오늘 이에 「散花」를 불러      오늘 이에 散花 불러
巴寶白乎隱花良汝隱       뿌리온 꽃아, 너는,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곧은 마음의 命을 부리옵기에,      곧은 마음의 命에 부리워져
彌勒座主陪立羅良        彌勒座主를 모셔라!          彌勒座主 뫼셔 羅立하라.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

生死路隱
此矣有阿米次肹伊遣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隱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奴隱處毛冬乎丁
阿也彌陀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生死路는                         生死 길은
예 있으매 젛이여서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 말도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느닛고.                    몯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가는 곳 모르온저.
아으, 彌陀刹에 만날 나는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
道 닦아 기다리련다!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

 경덕왕 19년(서기 760) 경자 4월 초하룻날, 해 둘이 나란히 떠서 10여 일간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진언하기를,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을 드리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조원전에 단을 깨끗이 모시고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 마침 월명사란 이가 천백사의 남쪽 길로 지나가므로 왕은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들여 단을 열고 계청을 지으라 명했다. 월명사는 왕께 아뢰기를,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오직 향가만 알고 범패 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정하였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
고 하였다. 월명사는 이에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가사는 이러하다.
<도솔가>
 이것을 시로 다시 풀어보면 이렇다.

용루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
청운에 한 떨기 꽃 뿌려 보냈네
은근히 굳은 마음에서 우러나
멀리 도솔천의 큰 선가(仙家)를 맞았네

 지금 세속에선 이것을 <산화가>라 하나 잘못된 것이므로 <도솔가>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산화가>는 따로 있으나 문장이 번다해서 싣지 않는다.
 <도솔가>를 지어 부른 뒤 곧 두 해의 괴변이 사라졌다. 왕은 월명사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차 달이는 기구 한 벌과 수정 염주 백 여덟 개를 주었다. 그런데 홀연히 모습이 정결한 한 동자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차와 염주를 받들고 궁전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갔다. 그 동자를 두고 월명사는 궁중 안의 심부름하는 아이라 하고, 왕은 대사의 시중을 드는 아이라 하였으나, 그 현묘한 징표로 보나 모두가 아니었다. 왕은 매우 이상스럽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를 추적하게 하였는데, 동자는 내원의 탑 속에 숨어 버리고 차와 염주는 내원의 남쪽 벽에 그려 놓은 미륵보살의 성상 앞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이 월명대사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미륵보살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이 일은 온 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은 더욱 월명사를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더 주면서 정성껏 표창했다.
 월명사는 또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그를 추모했는데,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을 서쪽으로 날려보내 사라지게 했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제망매가>
 월명은 항상 사천왕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한 번은 달 밝은 밤에 그가 사천왕사 문 앞 큰 길에서 피리를 불며 지나갔는데 달님이 그 소리에 운행을 멈춘 일이 있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월명리라 했으며, 월명사도 이로 인해서 이름이 났다. 월명사는 능준대사의 문인이다. 신라 사람들 중에는 향가를 숭상하는 이가 많았는데, 이것은 대개 『시경』의 송(頌)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끔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찬으로 말하면 이러하다.

바람이 돈을 날려 저승 가는 누이 노자로 쓰게 했고
피리 소리가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를 머물게 했구나
도솔천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萬德花) 한 곡조로 쉽게 맞았네.

- 『삼국유사』권5, 감통(感通), 월명사 도솔가

 배경 설화도 그렇고, 지은이도 그렇고 <도솔가>와 <제망매가>는 같이 설명하는 게 편하지요:) 특히 향가를 다루며 8세기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일단 당대 최고의 향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월명사가 4구체의 향가를 창작했지요. <도솔가>는 '호칭-명령-가정-위협'이라는 주술 노래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물론 불교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불교의 의식에 사용된 주술계 노래라는 견해가 타당해 보이기에 이쪽을 따릅니다), 위협적인 어법이 없으며 명령도 약화되어 나타납니다. 즉 신비한 주술의 세계에서 서정적인 불교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민요계 향가가 상층부로 가서 서정시가가 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뒤에서 볼, 동시대의 <도천수대비가>는 사뇌가계 향가가 민중층으로 내려가는 양상을 보여주고요. 이를 통해 향가가 정말 명실상부한 '신라인의 보편 시가'로 확립됨을 알 수 있습니다.

 <도솔가>를 먼저 보도록 할까요. 2행의 '巴寶'가 해석의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양주동 선생은 뿌리다(散)로, 홍기문 선생은 '빠호'(옛 한글이 안 먹히는 슬픔ㅠ 첨부된 한글 파일을 참조하시면 좀 도움이 될 듯하네요;;)로 보아 여러 꽃 중에서 선발된 것으로, 김완진 선생은 '돋우다/솟구치다'로 본다네요. 해석만 보면 꽤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정작 앞뒤의 문맥과 함께 보면 셋 다 크게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산화공덕과 관련 있는 꽃, 정도가 되겠네요.
 학자들의 견해가 갈리는 또 다른 문제는 '① 유리왕대의 도솔가와 같은가 ② 도솔가와 산화가의 관계는 어떤가'라네요. 차례대로 살펴보지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1, 유리왕 5년의 기록을 보면 유리왕은 국내를 순행하다가 늙은이가 얼어죽을 지경이 된 것을 보고 자신의 죄라고 말하며, 관리에게 명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며 부양케 하였다고 합니다. 이 해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하므로 비로소 <도솔가>를 지으니 이것이 가악의 시초였다고요. 이것과 향가 <도솔가> 둘 다 '도살풀이/도살노래'라고 하여 회생(回生), 부활(復活), 복원(復元)의 뜻을 가진, 같은 향가라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유리왕대의 <도솔가>는 치리가(治理歌)이고, 월명사의 <도솔가>는 불교 사뇌가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요. 아마 후자쪽이 더 타당하리라고 봅니다. 이 맥락에서 '민속이 즐겁고 편안'한 것과 관계가 있는 노래가 나올 까닭이 없으니까요.
 다음은 <도솔가>와 <산화가>와의 관계입니다. 양주동 선생의 경우, 1행에 '散花唱良'이라고 하므로 원래 <산화가>로 지어진 것이라 하는 반면, 이전의 오구라 신페이나 이후의 많은 학자들은 <산화가>를 순불교적 게송 같은 것으로, <도솔가>는 산화의식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지요. 종교 얘기만 나오면 가방끈 짧은 저는 입다물고 조용히(…)
 '두 개의 해가 함께 보였다[二日竝現]'이라는 산문 기록에도 이견이 있더군요. 하나는 기록 그대로를 존중하여 태양계의 이변을 해가 두 개인 것처럼 인지했다는 의견이며, 다른 하나는 신라 정치 사회의 변혁을 담고 있다는 의견입니다. 이를테면 군왕이 있음에도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 급격하게 부상하는 것 말이지요. 전자든 후자든 노래의 성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보이지만- 왠지 후자쪽이 더 강하게 끌리네요. 글로써 정치적 변란을 잠재웠다고 할 수 있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다음은 <제망매가>입니다. 멋모를 때는 '제망/매가'라고 읽었는데, 정확하게는 '제/망매/가'가 맞지요. 사실 해석상의 큰 차이는 없습니다. 2행에서 '(죽고 사는 길이 - 여담이지만, 북한의 '죽사릿 길'이란 표현도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렸다고 봅니다) 여기 있으매, 두려워하고'라는 해석과 '~ 있으매, 머뭇거리고'라는 해석이 존재하지만 전체 맥락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요. 또한 10구체 향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예시로 쓰기도 좋은 작품입니다.
 우선 1-4행에서는 누이의 죽음에 마주선 괴로운 심경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는 것인가'라는 탄식 속에서 육친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 5-8행에서는 개인적인 아픔이 생명체 일반의 원리로 확대되고 있고요. 모든 유한한 생명을 지배하는 힘인 '바람'과 보잘것 없는 개체의 이미지인 '잎'의 대립적 심상에서 모든 생명체의 무상성(無常性)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아참, 그리고 흔히들 '한 가지'는 부모로, '잎'은 형제로 해석하지만 이를 좀 더 확대해서 우리가 머무는 세상과 모든 인간 존재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어나고 전개된 시상은 9-10행에서 집약·마무리됩니다. 첫머리의 감탄사는 이처럼 심화된 고뇌의 극한에서 터져나오는 탄식이자 종교적 초극을 위한 탄성이기도 하지요. 즉, '감탄'이라는 것이 인간이 경험적으로 예측가능한 수준을 넘어설 때 나온다는 점에서 하나의 결절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후에는 지상적 삶의 무상함을 넘어 광명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불교적인 발원(아미타신앙)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고보면 육친의 죽음을 다룬 시가 참 많군요. 아들의 죽음을 다룬 <유리창Ⅰ>이나 <은수저>, <눈물>, 형제의 죽음을 다룬 <이별가>, <하관>, <가을 무덤-제망매가>… 그 중에서 똑같이 누이의 죽음을 소재로 한 <가을 무덤 - 祭亡妹歌(제망매가)>를 소개하며 오늘은 이만 끝낼까 합니다.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
시리도록 허연 이 零下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나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가 배어나온다.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
부딪히며 하구로 떠내려갔음에랴.

우리는 神經을 앓는
中風病者로 태어나
全身에 땀방울을 비늘로 달고
쉰 목소리가 어둠과 싸웠음에랴.

편안히 누운 내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술을 부으면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술방울이
이 못난 영혼을 휘감고
온몸을 뒤흔드는 것이 어인 까닭이냐

- written by 기형도


 다음에는 월명사와 쌍벽을 이루는 충담사의 향가가 이어지겠습니다. 분명히 또 엄청 길어지겠지만-_- 반(半)굽이를 돌아나온 듯하니 무언가 좀 뿌듯하네요^^a

+ Written by 玄月 at 2008/11/20 20:41
+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11/20 23:58 
 분홍빛 기형도의 시가 어쩜 이리도 절절한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향가를 접하면서 예전 공부하던 시절 생각도 나고 새삼 꼼꼼하게 읽어보게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
+ Commented by 玄月 at 2008/11/22 03:43
 와아, 피리님이 역시 제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읽어주셨네요^^; 저도 공부한 것을 그냥 묻어두기 아쉬워서- 정리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도 읽고, 작품 원문을 한 번씩 더 살펴보고 그러는 중이랍니다. 향가는 공부할수록 재밌는 거 같아요. 좀 더 열심히 해서 직접 해석하며 논평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도 하지만 말예요.
 기형도의 시는, 역시나 수업시간에 엮어서 들었던 건데 계속 기억에 남더라구요. <마음사전>에서 얘기했듯, 처절함보다 처연함에 가까운 그 내용들이 꽤 오래 마음 속을 돌아다녔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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