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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고전시가

향가 (7) - 헌화가

by 玄月-隣 2011. 12. 23.


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끝에,          자주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吾肹不喩慙肹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하시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

 성덕왕(702-737) 때에 순정공이 강릉(지금의 명주) 태수로 부임해 가는 도중이었다. 가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절벽이 바다에 맞닿았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으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는 그 꽃을 보고 옆사람들에게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사람이 발 붙일 곳이 못 됩니다."
하고 난색을 표하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마침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철쭉꽃을 꺾어 가지고 와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바쳤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순정공은 발을 동동 구르며 땅을 쳐 보았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있다가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는데 지금 바다 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당장 이 경내의 백성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순정공이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쳤다.
 순정공은 부인에게 바닷 속의 사정을 물었다. 부인은
 "칠보 궁전에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있고 깨끗하여 세상에서 흔히 먹는 익히거나 삶은 음식이 아니더라."
고 하였다. 수로부인의 옷에도 향기가 배어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었다.
 수로부인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 여럿이 부른 해가의 가사는 이러하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어놓아라
 남의 부녀 약탈한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내어 구워 먹겠다.

 노인이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래는 이러하다.

-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 수로부인

 <헌화가>는 사실 노래 자체는 간단한 편입니다. 물론 어석의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를테면 철쭉꽃의 빛깔을 두고 '붉은', '짙붉은', '자줏빛' 같은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 해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바탕은 마련되어 있지요. 원전비판 문제에 거의 이견이 없으며, 끊어읽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4구체 향가의 짧은 내용 속에서 더 이상 논의할 게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문맥 속에서 <헌화가>를 읽을 때엔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
 향가는 흔히들 그 배경설화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그러지요. 서정시로서의 독자적인 미학이 없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일이지만, 문맥 속에서 파악할 때야 다층적인 의미가 드러난다고요. 그렇게 볼 때 <헌화가>의 배경설화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배경설화는 노인헌화담과 수로부인의 피랍담이 결합되어 있지요. 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자입니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牽牛老翁)의 정체입니다. 불교적인 가요라는 입장에서는 소를 찾는(尋牛) 선승으로 보고 있으며, 농경의례와 관련된 농신이나 도교 사상과 관련된 도교적 신선이라고도 하지요. 혹은 생명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바쳤다는 측면에서 신사도의 기백을 가진 노신사로 보아 화랑적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고요. 깊은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평범한 시골 농부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시가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노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선 불교적 수행과 관련된 선승의 노래라고 보는 쪽이 있지요. (그러나 '심우(尋牛)'는 선종에서 나오는 이미지인데, 노래는 33대 성덕왕, 선종의 유입은 42대 흥덕왕 때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답니다.) 또한 초자연적 신이나 신격화된 인물의 노래, 일상적인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세속적 노래, 토착의 주술·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무속적 노래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조금 더 들어가볼까요. 예창해 선생은 수로부인을 접신(接神) 과정을 겪는 여인이라 봅니다. 용이나 노옹은 신격으로, 순정공은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유자(선비라고 보시면 되지요)로 파악하여 이 시기 신라사회의 무속 원리와 유교 원리의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교가 들어왔을 때 그러했듯이, 유교 역시도 대립의 과정을 안 거쳤을까 생각해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조동일 선생은 <해가>와 <헌화가>를 동일한 원리에서 보고 있지요. 순정공은 관권의 대리자로, 수로부인은 무당으로, 노인은 민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격으로 설정하여 신라 지배층이 민심 수습책으로 행했을 굿과 관련짓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꽃을 받는 것을 영력(靈力)을 갖기 위한 신병 체험으로 보고 있지요.
 여기현 선생 역시 유사한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헌화가>는 꽃거리, <해가>는 용거리와 관련 지어 제물, 그리고 죽음과 재생이라는 내용을 풀어나가지요. 가뭄에 백성을 구제하였다는 내용이 대부분인 성덕왕條가 기이(紀異)편에 수록된 것은 그만큼 가뭄이 심각했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옹이 끌고 나오는 소는 원래 제물이지만, 암소를 바쳐 제의의 효과를 얻기에는 위기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다네요. 때문에 가뭄이 들면 왕이 기우제의 희생이 되었던 고대의 전통을 따라 제물의 효력과 제물의 가치를 갖춘 수로부인이 - 본래 지니고 있는 여성 원리로 生生力을 상징하며, 생생력이 극에 달한 붉은 철쭉을 받음으로써 이 힘은 배가되지요 - 대체 제물로 쓰인 것이라고요.
 아마 제의적인 성격과 관련해서 서사문맥을 함께 읽는 것이 전체적인 상을 아우를 수 있는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선(晝饍)'이나 '꽃'의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거든요. 보통 보통 일반인의 점심은 '주식', '중화'라고 표현하는 반면 임금의 식사나 제사의 제물을 두고 '주선'이라고 한다는데- 이를 보면 낭떠러지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무사안위를 비는 노래라는 제의적 관점이 힘을 얻습니다. 또한 왜 하필이면 '꽃'이었을까요. 우리 문학사에서 꽃이 연정의 모티브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뒤에서 살펴볼 <도솔가>의 경우에도 꽃은 주술적 상관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가요에서도 꽃을 꺾어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유독 이 작품에서만 꽃을 연정의 모티브로 해석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성기옥 선생의 견해에 눈길이 가네요. 서사문맥의 비중이 아무리 막중하더라도 관심의 초점이 서사문맥에 집중되어 버리면, 시가 자체의 성격이 모호해진다고 하지요. 시가를 표층적인 수준에서만 살피면 <헌화가>는 명백하게 남성화자가 여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구애의 언어 형태이며, 노인 헌화담과 수로부인 피랍담이라는 각각 완결된 두 개의 배경설화는, 일연의 논평을 따라간다면 '수로부인이 절대가인이라서'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물속의 용까지, 천 길 벼랑을 오를 수 있는 비범함을 보이는 노인까지 빠져들게 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의 마력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따라서 <헌화가>는 신화적 인물이 인간(여성)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래이며, 이 같은 '인간적 아름다움의 초월성'에서 신라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네요. 선덕여왕과 지귀처럼 신분적 질곡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惡神(처용의 아내를 탐한 역신)이나 鬼神(도화녀를 찾아간 진지왕)까지 감동시키며 신들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의식을 말이지요.
 아래에 첨부하는 세 편의 시 역시 이 같은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시에 시인이 덧붙인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네요:)




 4구체 향가가 이렇게 길게 갈 줄이야… 그래도 예쁘면 다 용서가 됩니다(?!)
 +) 거북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영문도 모르게 머리를 내놓으라지 않나, 용이 데려간 수로부인을 찾아오라지 않나, 툭하면 뭘 내 놓으라고 그러니 말이죠^^;

+ Written by 玄月 at 2008/11/03 18:33
+ Commented by julia at 2008/11/03 19:12 
 헌화가 좋아*-_-*
+ Commented by 玄月 at 2008/11/04 11:25
 나도 <헌화가> 좋아+_+/ 남의 애정사는 재밌다는… (응?) 여튼 이왕 공부할 거면 좀 발랄한 작품 원츄~
+ Commented by blus at 2008/11/03 19:24 
 개인적으로는 양주동선생님 해석을 좀 더 애호하는 편입니다. 약간의 고어풍인 것도 같은 것이 매력이지 않나요? 예쁘면 다 용서가 되는거에요.(응?)
 헌화가와 동시에 황조가는 정말...아옳옳옳옳!! ;ㄱ;/
+ Commented by 玄月 at 2008/11/04 11:34
 저 역시도 양주동 선생님의 해석을 더 좋아합니다. 실제로 읽어봤을 때도 울림소리가 많아 그런지 부드럽고, 다른 해석들보다 고어에 가까운 것도 마음에 들거든요.
 황조가는 그 유명한 패러디인 '외로울사 이 내 몸은 / 구워먹으리'가 자꾸 떠올라버려서^^; 역시 사랑 노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나봅니다:)
+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11/03 23:33 
 아이코 이런 슬픈 거북이의 운명이라니 ㅠㅠ;;;;
 헌화가는 짧으면서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도 이쁘면 다 용서되는?^^ 분위기였나봐요 크흑 ㅠㅠ
+ Commented by 玄月 at 2008/11/04 11:43
 그쵸- 거기다가 잘못도 없는데 툭하면 구워먹겠다고 협박이나 하고. 불쌍한 거북이.
 예쁜 건 그 때부터 진리였던 듯해요. 하긴, 곰한테 <헌화가> 포스팅 중이라니까 대뜸 '수로부인 사진도 올려라!'라는 말을 하던걸요^^; 그런데 왜 얘기하면서 눈에 습기가ㅠㅠ
+ Commented by 소하 at 2008/11/05 13:05 
 밸리 타고 왔습니다. 링크 신고합니다.^^
+ Commented by 玄月 at 2008/11/10 12:06
 감사합니다:) 저도 <환단고기>에 대한 글 감명깊게 보고 링크 신고합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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