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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상/보고 듣고 생각하고

140822-24. 주말 대전 나들이

by 玄月-隣 2015. 3. 22.



 금요일 오후. 접선 장소는 계룡문고.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르고도 시간이 남았기에 잠시 노닥노닥. 그래도 착하게(?) 책은 안 샀다ㅋ 서점 한 켠의 헌책방, 노오란 공간이 편안했던.
  사실 지역에서의 서점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책은 여기서 사는 게 맞지만, 으음... 그저 뜨끔뜨끔한 마음을 안고,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라고 할 밖에. 



 저녁은 이정옥 선생님의 25년 단골집에서. 심심한 느낌의 두부탕, 좋더라. 두부를 먹다가 넣은 사리는 배가 부름에도 자꾸 손이 가게 하는 맛. 배불배불 신난다♬

 


 그리고 탐내던 카페 안도르. 옛 건물의 향취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음료도 깔끔하게 맛있었고, 노트북을 이용해서 내 작품을 바로 걸어놓을 수 있다는 것도 이채로웠던. 하지만 역시 눈길을 끌던 건 마당에서 자유롭게 놀던 아가들. 뒤태도 묘하게 닮은 엄마냥과 아깽이들을 보며 하염 없이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팠던 순간.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던 골목과, 다음에 다시 오기로 꼭꼭 약속했던 국밥집을 지나 도착한 아트시네마. 오늘의 영화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서정소설이라는 원작의 배경을 잘 살렸던 메밀꽃 필 무렵, 판소리에 서술자의 목소리를 얹은 것이 잘 어울렸던 봄봄, 20년대 경성 거리가 기막히게 재현되어 있던 운수 좋은 날. 모두 마음에 들었다.
 90여 분의 애니메이션 세 편을 보고난 뒤, 감독과의 대화. 왜 이 세 편이었는지에 대한 답으로 다른 편들을 더 만들고 있다는 감독의 말에 반가운 마음 가득. 10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교과서에서 밀려나며 소통의 길을 잃어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감독의 시각에 나도 공감. 작품 배열 순서는, '그 집 앞'을 꼭 연결하고 싶었다는 대답으로. 확실히 여운이 많이 남는 결말이었지. 이해하기 조금 어렵긴 하겠지만, 원작의 대화는 손을 보지 않겠다고 한 감독의 결심에도 박수를. 


 토요일, 굉장히 오랜만의 토요 동아리.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책 좋아하며 눈 반짝이는 애들을 보면 이것저것 다 주고 싶으니까. 어제의 영화에 촉발되어 3학년 과제는 메밀꽃 필 무렵, 2학년 과제는 봄봄.
 2학년은 사건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애들에게 등장 인물의 가치 평가를 내려보게 하는 것도 재밌었고. 조금 더 준비했더라면 약식이나마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지만- 아아, 나는 나를 너무 믿나보다. 다음 번에는 애들한테로 내용 구성을 좀 더 넘겨봐야지.
 3학년은 작품의 비교를 통해 작가의 특징을 파악하는 쪽으로. 더불어 시점의 차이가 작품의 결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좀 더 대중적인 작품의 예시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시 쓰려니 내가 귀찮아서 예전 글 그대로. 그러면서 월요일에 전체 동아리 활동 진행할 틀을 좀 잡고. 



 인쇄 작업을 좀 하다가 친한 쌤들을 만나면서 수다 모드로 돌입. 학교 이야기 - 아이들에 대한 고민과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얼마만한 복인지! 더불어 17시간의 기아체험(전혀 본의는 아니지만)을 마치고 먹은 빙수도 달고 시원하고 맛있어서 좋았던. 

 

 그리고 벼르던 시립미술관 전시회로. '피카소와 천재화가들', 이라고 제목을 뽑았지만, 예전 '마티스와 불멸의 화가들'보다 더 뻥인 제목이라고 생각. 메인으로 건 피카소의 이름값 때문이겠지만, 사실 작품의 양이나 질에서 거의 1/n이었는 걸. 로스코의 원화를 처음 본 것과, 20세기 후반의 추상미술들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게 수확.



 하루의 마무리는 대청댐 드라이브로. 아련하게 잡힌 불빛들이 왠지 더 마음에 남는. 너무 화려한 야경보다야 이쪽이 취향인 걸. 

 
 한가한 일요일의 시작은 조조영화로. 김윤석을 보고 싶어서 <해무>를 선택했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날것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는 주말 오전의 셀렉트로는... -_-; 저마다의 욕망으로 가득한, 그래서 출구 없는 배에서 그 욕망들이 부딪혀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야 말로 세상, 임을 보여줬던. 

 
 아아, 이제 또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구나. 주말이 가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