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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상/보고 듣고 생각하고

2007년 여름. 제국의 뒤안길을 걷다 - 발걸음 둘.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by 玄月-隣 2015. 3. 22.

 다시 밝아온 넷째 날. 압록강을 따라 들어가며 백두산의 속살을 마음껏 구경했다. 예전과는 달리 강변도로가 나서 다니기는 편하지만 이는 관광이나 상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 재빨리 군대를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듣자 즐거운 기분이 얼어붙기도 했지만. 바로 강 건너로 보이는 게 북한 땅인데 국경을 따라가면서는 허가 없이 차를 세우거나 하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결국 좀 더 자세히 북한을 보고 싶은 마음은 달리는 차 속에서 찍은 서툰 사진 몇 장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잡아내야만 하는,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체제에 자신이 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초소와 해마다 일어나는 홍수의 원인이 되는 뙈기밭. 나무 한 번 하려면 사흘거리를 가야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밥 짓는 연기가 끊긴지 오래 된 30여 년 전의 협동농장 건물과, 뗏목을 만들어 나무를 팔러 가는 사람들.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용악의 시편들이 겹쳐져 보였다.



 사실 ‘역사기행’에만 눈이 멀어서 왔지만, 이날 본 북한의 모습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을 살려놓고 보는 게 우선 아닌가, 왜 아직껏 이러고 있나 같은 현재에 대한 것부터 해방 3년사에 이르기까지 보고 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뭐라고 딱히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보고만 있기엔 참 가슴이 아팠다는 거.


 다섯 째 날의 아침은 유달리 바빴다. 백두산 등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준비를 마치고 나섰는데 이런- 비가 온다. 올해 우리나라에 장마가 늦은 만큼 이곳도 장마가 늦어져서 하필이면 그 기간이 겹친 것이다. 5위안(650원)짜리 우비를 하나 걸치고 산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겨우 들어갈 수는 있었는데, 발길은 비룡폭포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8일째 입산 금지라는데 어쩌겠는가. 천지에 손 담그고 그 파란 물을 직접 보는 건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아쉬움을 달래며 소천지로 향했다. 바람조차 자는 날이면 정말 거울이 따로 없다고 하는데, 비가 오는 날의 분위기도 꽤나 멋졌다. 호수 주변엔 자작나무가 유달리 많았다. 자작나무 껍질에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니 한 번쯤은 해보고픈 마음도 생겼지만 백두산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풀 한 포기 돌 하나라도 들고나가는 것이 걸리면 무조건 벌금이라는 거. 가난한 여행자에겐 참 제약도 많았다. 그리고 돌아본 백두산 원시림. 사람 키의 서너 배쯤은 우습게 아는 나무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백두산은 화산.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뿌리들은 꿈틀거리는 그 생명력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척박한 땅에서도 수십, 수백 년을 굳건하게 살아온 것이 그저 신기할 뿐. 그런 굵직굵직한 나무들 틈으로 보이던 소담한 초롱꽃은 또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