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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원하는천사2

소립자 2(허연) 기억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낡은 것이다.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고 있던 줄무늬 장갑이라든지, 부시시 깨어나 받는 전화 목소리라든지, 술에 취했을 때 눈에 내려앉는 습기라든지. 낡은 것들이 점점 많아질 때 삶은 얼마든지 분석이 가능하다. 어떤 오래된 골목길에 내가 들어섰던 시간, 그 순간의 호르몬 변화, 가로등 불빛의 밝기와 방향, 그날의 습도와 주머니 사정까지. 나를 노려보던 고양이의 불안까지. 그 골목에서 이런 것들이 친밀감의 운동을 시작했고 나에게 수정되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 했고, 누구는 그날 파열음이 들렸다고 했으며, 누구는 그날 개기일식이 있었다고 했다. 바람이 분다. 분석해야겠다. - , 문지, 2012 시가 눈길을 끌었던 건 아마 마지막 행 때문이었겠지.. 2013. 10. 29.
別於曲(허연) 그대의 날들은 길어서 홍적세의 긴 틈새를 지나 오늘도 남아 있네. 저 아프게 날선, 서리 내리는 날, 끝도 없는 기다림은 언제까지인지. 이루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새들은 오늘도 서쪽으로 날아가고, 그대 세월에 갇혀 오지 못하는 꿈에서 간신히 깨어 덜컹대는 이번 세기의 기차 속에서 수십만 년의 그리움으로 남은 그대 어디로 실려 가는지. 실려 가는 그곳에서 그때 그 노래를 부를 수는 있는 건지 노래로 늙어갈 줄 알았다면 그 말의 무늬와 바람의 색깔과, 차가운 새벽의 냄새를 기억해놓았을 텐데 밤이 오고 또 밤이 가는데. 견디는 모든 것들은 화석이 되고 새들은 또 날고. 오늘 아침 철로변에서 그리움은 서리로 내리고. 또 그대는 견디기만 하라 하고 그대의 날들은 너무 길고 길어서. - , 문지, 2012 시집을 .. 2013.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