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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책 읽기 책 일기

금강(錦江), 그 길고 긴 이야기(신동엽)

by 玄月-隣 2014. 8. 5.

2003년 6월 작성.


 내가 「금강」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신동엽’이라고 하면 「껍데기는 가라」「산에 언덕에」 같이 극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나. 하지만 「금강」을 만나면서부터 신동엽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다. 많은 시 중에서 유독 「금강」이 그렇게 맘에 들었던 이유는 시인의 밝은 눈 때문이다. 사회 시간에 배웠듯 신민에서 시민으로 변해가는 동학 혁명기. 그 이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 목소리를 낸 것은 ´19 만세운동, ´60 4·19 혁명, 70년대 유신 반대 투쟁, ´80 광주 민주화 운동, ´87 6월 항쟁. 지금이야 배우니까 이들이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잡히는 구나, 라고 쉽게 알 수 있지만 40여년 전에 이미 그 역사의 흐름을 읽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동학 농민 운동 때 농민군의 한 사람이었던 신하늬.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그저 진아랑 아기 하늬랑 땅을 일구며 땀 흘려 일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을 눈 맑은 사람. 그는 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을까. 왜 신음소리 하나 없이 찢길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왕은, 백성들의 가슴에 단 꽃.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그러나 그들은 이미 제 본분을 잊었다. 우리의 아래에 있던 그들이 기어 올라와 우리를 밀어내고 상전 노릇 하기 시작한 이 역할의 전도. 여기서 모든 비극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던 아름다운 땅. 특권층도 없었었던 행복한 생활의 시대. 하지만 낙지말거머리빈대가 모든 것을 차지해 버렸다. 이 땅의 주인, 이 시대의 주인은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894년 3월, 우리는 힘을 한 데 모았다. 우리의, 가슴 처음 만져보고, 그 힘에 놀랐다. 우리는 신민이 아니었다. 우리는 시민이었다. 우리의 힘, 시민의 힘. 그러나 윗자리 차고앉은 낙지들은 우리의 참모습을 부정했다. 주인인 우리는 순식간에 역도로 몰렸고 많은 피 흘렸다. 돌에도 나무 등걸에도 있었던 하늘은 우리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우리는 슬펐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옛날처럼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분배의 무치부 마을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우리가 얘기한 후천개벽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왕실의 약속을 믿었던 것인데, 무기를 잡았던 손에 다시 농기구를 잡았는데, 배신당했다. 좌절된 우리의 꿈, 꺾여진 희망. 역사는 뒷걸음질쳤고 암흑기, 일제 강점기가 다가왔다.
 1919년 3월 반도 곳곳에서는 만세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을 꿈꾸던 우리는 우리 가슴 성장하고 있음 증명하기 위하여 팔을 걷고, 얼굴 닦아보았다. 하늘 물 한 아름 떠다 우리의 얼굴 닦아본 우리. 하늘 새긴 너른 가슴과 희망으로 빛난 얼굴. 우리는 덜 많은 피 흘렸다. 시간이 흐른 만큼 우리는 더 자란 것이었다. 우리 손에는 무기가 없었다. 우리는 태극기 하나 들고 참된 하늘이 오길 소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맨몸뚱이의 우리도 두려워했다. 총을 쏘았다. 하늘을 그리워 한 우리 중 일부는 몸을 벗어놓고 하늘로 갔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우리. 기다림이 너무 길었던 것이리라. 멋도 모르고 하늘을 보여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계속 되는 거짓 하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1960년 4월. 우리는 다시 일어났다. 넘치는 가슴덩이 흔들어 우리의 역사밭 쟁취한 것이다. 적은 피 흘리고 맞이한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번에야말로 우리는 이 하늘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나씩 하나씩, 느린 걸음이지만 보다 많은 우리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급한 무리가 다시 우리를 짓밟았다. 군인이라는 이름의 그 무리. 새로운 낙지. 하늘은 다시 숨어버렸다. 우리가 주인이지 않은 세상에서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하늘을 다시 꿈꾸며.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하늘을 봤다. 낙지가, 말거머리가, 빈대가 우리 앞을 막아섰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가능한 일이던가? 우리는 하늘을 보았고, 그 벅찬 감동을 여태껏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보기 위해 애쓴다. 하늘 너머 그 멀리 흘러다니는 하늘 소리를 들으려고 힘쓴다. 지나간 바람과 내일의 하늘이 사이좋게 드나들고 있을 투명한 하늘을 꿈꾼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느새 시인이 꿈꾸던 하늘 한 조각이 내게도 들어와 박혔나보다. 그가 바라던 세상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갈고 담은 우리들의 푸담한 슬기와 자비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 세상 쟁취해서 반도 하늘높이 나부낄 평화, 그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어떤 이한테서도 피 흩뿌리지 않고 하늘에는 평화를, 땅 위에는 하늘을. 낙지발에 빼앗김 없이, 다시는 그 모든 결과를 앗기지 않고 온새미로 우리의 손에-
 지나간 일에 가정이란 없지만, 그래도 한 번은 생각해보게 된다. 신동엽님이 살아있다면 74세.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또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아마도 그라면 타협하지는 않을 거야. 문인들한테는 몇 겹으로 채워지는 방성구를 피해 제 목소리를 내다가 감옥에 가는 것도 수차례. 흐르는 피를 같이 아파하면서도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겠지. 우리 사랑밭에 우리 두렛마을 심을, 아 찬란한 혁명의 날을 기다릴 테니. 나도 그럴 테야. 조금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조금 아프다고 돌아서지 말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반도, 우리의 하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입김은 혹 해후할 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