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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부32

別於曲(허연) 그대의 날들은 길어서 홍적세의 긴 틈새를 지나 오늘도 남아 있네. 저 아프게 날선, 서리 내리는 날, 끝도 없는 기다림은 언제까지인지. 이루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새들은 오늘도 서쪽으로 날아가고, 그대 세월에 갇혀 오지 못하는 꿈에서 간신히 깨어 덜컹대는 이번 세기의 기차 속에서 수십만 년의 그리움으로 남은 그대 어디로 실려 가는지. 실려 가는 그곳에서 그때 그 노래를 부를 수는 있는 건지 노래로 늙어갈 줄 알았다면 그 말의 무늬와 바람의 색깔과, 차가운 새벽의 냄새를 기억해놓았을 텐데 밤이 오고 또 밤이 가는데. 견디는 모든 것들은 화석이 되고 새들은 또 날고. 오늘 아침 철로변에서 그리움은 서리로 내리고. 또 그대는 견디기만 하라 하고 그대의 날들은 너무 길고 길어서. - , 문지, 2012 시집을 .. 2013. 10. 25.
강(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 버티고, 2008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언니님의 서재에서 세로쓰기로 된 예쁜 시집을 찾았다며 냉큼 사버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집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것은 계절이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천천히 한자한자 읽어 내려가야 하는 세로쓰기 편집을 보며 타이프로 된 옛날 .. 2013. 10. 23.
봄(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 , 문지, 1994 창밖에는 목.. 2013. 10. 21.
향가 (10) - 안민가·찬기파랑가 君隱父也 臣隱愛賜尸母史也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民是愛尸知古如 窟理叱大肹生以支所音物生 此肹喰惡攴治良羅 此地肹捨遺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 默惡攴持以攴知古如 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 「君은 아버지요 君은 아비요 臣은 사랑하실 어머니요 臣은 사랑하시는 어미요, 民은 어린 아이로고!」 하실지면, 民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民이 사랑을 알리이다. 하실진대 民이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살손 物生이 大衆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려!」 할지면,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나라 안이 유지될 줄 알리이다. 할진대 나라 保全할 것을 알리라. 아으,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 할지면, 아아, 君답게 臣답게 民답게 나라 안이 태평하니이다.. 2012. 2. 24.